3층 성가대석으로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덤을 나오실 때 주변 돌을 손으로 딛고 일어서다 생긴 모양처럼, 또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그리스도의 화석으로 천년만년 남을 것처럼 손자국이 선명합니다. 성수가 담긴 손모양은 매끄러운데 주변 돌은 자연스럽게 깨어진 듯 마감해서 손 모양이 더 강조되어 보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토마스 사도에게 "내손을 보아라."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수를 찍을 때마다 예수님의 오상을 확인하라고 만든 것 같습니다.
‹ 장동호 프란치스코 ›우리에게 빛의 자녀로 살라고 성령강림 때까지 켜두는 부활 촛대입니다. 십자가와 같이 100년이 넘는 고목으로 깎여져 나무 자체가 고풍스럽습니다. 제대와 강론대 그리고 감실은 단순한 디자인에 흰색 대리석으로 모던함을. 부활십자가와 부활 촛대는 고목의 진한 나무색으로 옛스러움을 살려 전체적으로 차가울 수 있는 느낌을 보완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운데 부분은 성체로 모시는 제병 모양의 둥근 구멍 뒤로 성혈을 담는 성작처럼 조각된 촛대 몸체가 보이고, 그 겉을 많은 십자가 조각이 새겨진 한 겹의 또 다른 촛대 몸체가 감싸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십자가와 죄를 위하여 흘린 새로운 계약의 피라는 의미로 그 많은 십자가를 새겨 넣었나 봅니다. 부활초가 오상을 지닌 예수님의 몸을 의미하니 어쩌면 촛대는 피를 담든 성작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집니다.
‹ 셉 아우뮬러(Sepp Aumuller) ›뚜껑인 청동조각은 예수님의 가시관이면서 동시에 성모님의 7가지 고통을 의미하고 몸체의 12개 음각은 12제자의 붉은 피를 상징해서 붉은 돌을 조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안에는 거룩한 성령(성수)이 항상 숨쉬고 계십니다. 다른 본당에선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성수함에도 이렇게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 장동호 프란치스코 ›모든 성전은 제대를 중심으로 건축되어집니다. 제대는 주님의 식탁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제대포는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처럼 흰색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본당의 제대는 돌무덤을 깨고 부활하시는 예수님의 무덤 모양이라 금도 가고 깨어진 틈새로 조명을 넣어 틈새를 강조하며 빛이 새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움을 기념하고자 흰 대리석을 깎아 만들었나 봅니다. 제대판이 비뚤어진 것은 예수님이 관 뚜껑을 열고 나오셨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영혼만이 아닌 몸까지 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관 뚜껑을 밀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미사를 드릴 때 마다 이 제대를 보며 생각합니다. 저에게 영육의 부활을 증거하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저는 희망이 있고 두려움없이 행복하다고…
‹ 장동호 프란치스코 ›마치 한폭의 동양화처럼 간결한 선으로 마무리된 성모님상입니다. 성모님의 얼굴을 자세히 보시면 홑겹의 동양적인 눈매와 소녀처럼 여린 얼굴, 그리고 왼편으로 기울어진 기도하는 손모양, 까치발 들듯 발꿈치가 들어 올려진 맨발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모상이 긴 옷자락 속에 약간 보이는 맨발인데 반하여 우리 본당에 모셔진 성모상은 맨발을 특히 강조한 듯한 작품으로 땅에 발이 겨우 닿은 듯한 모습입니다. 아들 예수님의 부름으로 하늘에 들려 올려지는 순간처럼 말입니다. 성모상의 맨발을 보니 성모님의 일생을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됩니다. 신을 벗어 맨발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는 겸손의 자세이며 또한 공경의 자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행과 고난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 장동호 프란치스코 ›지하강당에 새로 모셔진 성물입니다. 우리 본당 성물에 가장 많이 쓰인 동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동을 일부러 부식시켜서 표면을 더 탁한 느낌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무로 조각된 작품같기도 하고 색으로만 보면 진흙을 구워 만든 테라코타 같기도 합니다. 작가분이 우리 본당 신부님의 미사 집전 모습을 연상하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단순함의 극치! 약해보이는 가는팔다리와 밋밋한 몸매가 예수님의 부할을 연상시키기 하지만 인도의 고승이 고행을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단단하게 보여지기도 합니다. 오직 주님의 양들을 바른 길로 이끌고자 고행의 삶을 수행하시는 우리 본당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도록 합시다.
제대와 마찬가지로 대리석 기둥에 황금색 감실이 모셔져 있습니다. 감실 주변은 청동 못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미사 때 마다 이 못 장식을 열고 황금 장을 열어 신부님이 성체를 꺼내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볼 때마다 죽음을 부활로 걷어내신 하늘과 땅의 왕(황금색)구세주 예수님을 모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부활의 참된 가치는 죽음을 겪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죠. 다른 여느 감실과 다르게 성체 등이 감실 뒤 간접 조명으로 처리되어 흔히 이콘에서 보는 성인들의 후광처럼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 멋스럽습니다.
‹ 장동호 프란치스코 ›성전입구에 주로 성수반이 있지만 우리 본당에서는 부활하신 하얀색의 예수님상이 성수대로 놓여있습니다. 성수를 찍으며 물과 성령으로 세례 받은 기억을 되살려 마귀로부터 깨끗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들어갑니다. 토마스 사도가 부활을 의심했다고 전해 들으시고 “내 옆구리에도 손을 넣어보아라”하셨듯이 손을 뒤로 돌려 구멍난 옆구리를 내어 주십니다. 뒤로 돌린 손은 ‘성자께서는 성부, 성령과 더불어 삼위이시다’라고 알려주십니다. 3층 성가대쪽 성수반처럼 직접 보고 만지며 부활을 확인하라는 듯 말입니다. 성당에 급히 들어가면서 생각 없이 옆구리에 깊게 손을 넣어 성수를 찍으면 우리의 손 때문에 넘쳐흐른 물 자국이 예수님의 흰옷을 타고 내려와 적시게 됩니다. 그러면 그제야 떠오릅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장동호 프란치스코 ›우리본당 십자가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푯말이 없는 부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금방이라도 하늘로 승천하려는 듯 비상의 자세로 서계십니다. 못에 박혀있는 고난의 모습이 아니기에 주님의 손바닥과 발등 그리고 옆구리는 다른 일반 십자고상과 달리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굉장히 크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100년이 넘는 고목으로 만들어졌으며 예수님 조각도 평균 남자 크기만 합니다. 아마 예수님을 처형했던 십자가도 저 정도의 사이즈였을 거란 느낌이 듭니다. 또한 아래에 있는 3개의 십자가는 부활하기 위해 예수님이 겪었던 많은 고통의 십자가를 의미하고 또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 셉 아우뮬러(Sepp Aumuller)오스트리아 조각가 ›예수님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